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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완수해야할 시련이 얼마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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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18-09-05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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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가 < 우리가 완수해야할 시련이 얼마인고! >라는 시를 쓴 것도 아마 시련속에서 이런 기회가 숨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릴케는 마치 ' 작업을 완수하다' 고 말하는 것과 똑같이 " 시련을 완수하다' 고 했다.  우리에게는 완수해야할 시련이 너무 많았다.
따라서 우리는 될수 있는대로 나약해지지 않고, 남몰래 눈물 흘리는 일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고통과 대면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 눈물 흘리는 것을 부끄러워할 팔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눈물은 그 사람의 엄청난 용기, 즉 시련을 받아들일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주 극소소의 사람만이 그것을 깨달았다.  어떤 사람들은 부끄러워 하면서 자기가 운적이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한번은 부종때문에 고생하던 동료에게 어떻게 나았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실컷 울어서 내 조직 밖으로 몰아냈지." ........

염쇄주의자는 매일같이 벽에 걸리 달력을 찢어내면서 날이 갈수록 그것이 얇아지는 것을 두려움과 슬품으로 바라보는 사람과 비슷하다.
반면에 삶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은 떼어낸 달력의 뒷장에다 중요한 일과를 적어놓은 다음 그것을 순서대로 깔끔하게
차곡차곡 쌓아 놓는 사람과 같다. 그는 거기에 적혀있는 그 풍부한 내용들, 그동안 충실하게 살아온 삶의 기록들을 자부심을 가지고
즐겁게 반추해 볼수 있다.
자신이 늙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때 그것이 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까? 젊은이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거나 잃어버린 자신의 청춘에
대해 향수를 가질 이유가 있을까?  무엇 때문에 그가 젊은이를 부러워하겠는가? 그 젊은이에게 놓여 있는 잠재 가능성 때문에? 아니면
그가 가지고 있는 미래 때문에?  "천만에 말씀"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가능성 대신에 나는 과거 속에 어떤 실체를 갖고 있어. 내가 했던 일. 내가 했던 사랑뿐만 아니라 내가 용감하게 견뎌냈던 시련이라는
실체까지도 말이야. 이 고통들은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지. 비록 남들이 부럽다고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말이야."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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