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하고 기회를 노려라
페이지 정보
본문
유행처럼 번지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의 기세가 멈출 줄 모른다. 우후죽순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반대로 스타트업 업계 내부에서는 ‘굴러온 돌’ 문제가 이슈다. 이직과 헤드헌팅이 많다 보니 박힌 돌과 굴러온 돌의 마찰도 잦고, 업무경계가 모호한 벤처 특성상 인재들의 경쟁이 입체적으로 얽히기 일쑤다. 피 튀기는 경쟁 속에서 블루오션 대부분이 어느새 레드오션이 된 셈. 이런 치열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비책은 과연 무엇일까.
‘집중(mass)’의 원칙은 군사작전뿐 아니라 삶의 모든 분야에 적용될 만한 기준이다. ‘집중해서 공부하라’는 말처럼 자주 들은 말이 또 있을까.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군사적 관점에서 보면 집중은 ‘결정적 시기와 장소에 상대적인 전투력을 한데 모으는 것’이다. 시기와 장소를 강조하는 이유는 자신이 가진 능력의 효과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위해서다. ‘상대적인 전투력’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가진 힘의 절대량이 중요한 게 아니라 상대적인 우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미군 합동참모대 교재 ‘Operational Art and Campaigning(작전 및 대규모 작전계획)’은 합동작전능력 향상을 위해 미국 각 군의 중령급 이상 고급 자원을 교육할 때 사용하는 지침서다. 이 교범에서는 특히 ‘집중’이 작전계획의 우수성은 물론, 작전 자체의 성공 가능성을 평가하는 기준으로도 매우 유용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상대 약점에서 내 강점을 찾아라
먼저 상대 약점에 우리 측의 강점을 쏟아붓는 전술 설계가 중요하다. 이와 관련한 가장 유명한 사례로는 중국 오나라 손자(孫子)의 경마 내기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손자가 제나라 장군 전기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 그곳에서 왕족들의 경마가 열렸다. 집주인은 3판제인 경마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상태였다. 손자는 상대의 가장 빠른 말에 전기의 느린 말을 붙이고 상대의 두 번째 빠른 말에 이쪽의 가장 빠른 말을, 느린 말에 이쪽의 두 번째 빠른 말을 붙였다. 그리하여 1패 후 2승을 전기에게 안겨준다. 약점에 강점으로 승부하는 전술의 요체다.
화력, 기동, 방호, 지원의 동시통합을 달성하는 일도 중요하다. 군사작전에서 이러한 동시통합은 흔히 ‘시간과 공간의 예술’로 불린다.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자신이 가진 자원과 능력의 효과가 한꺼번에 발휘되도록 조정, 통제하는 고차원 기술이다. 오늘날에는 인터넷 게임에서도 흔히 등장하는 근접항공지원(CAS)이 이 동시통합의 혁명적 사건이었다. 기존의 2차원적 지상전투에 항공전력의 지원 폭격이 결합하면서 3차원 입체전이 시작된 것이다.
비대칭 구조를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쉽게 말해 상대방이 어찌할 수 없는 수단, 방법,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비대칭 수단의 대표적 예로 북한의 방사포와 미국의 무인항공기(UAVs)가 있다. 방사포가 아무리 위력이 있다 해도 시대에 뒤떨어진 무기체계이므로 우리로서는 유지할 수 없다. 아프가니스탄은 미군의 무인항공기가 뛰어나다는 걸 잘 알지만 능력이 없으니 쓰지 못한다.
자, 비즈니스 현장으로 돌아올 시간이다. 당신은 이제 급부상하기 시작한 스타트업에 새로 취업한 ‘굴러온 돌’이다. 당연히 기존의 박힌 돌을 빼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업무영역이 겹쳐 불가피한 경쟁구도가 형성될 때, 당신의 생존비결은 무엇인가. 집중의 원칙을 적용해보자.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상대 약점에서 나의 강점을 찾는 일이다. 상대 약점을 찾아 공격하는 것도 좋겠지만, 한발 더 나가면 내가 강한 분야를 찾아 새로운 가능성에 투자할 수도 있다.
벤처기업에 헤드헌팅된 20대 후반의 후배가 있었다. 그는 창업 멤버인 팀장 한 명과 강점이 겹쳤다. 외부업체와의 협력과 투자 유치였다. 실력으로 경쟁해볼 패기도 있었지만, 후배는 중간에 방향을 바꿨다. 칼퇴근 후 사생활을 중시하는 팀장 대신 후배는 기업 대표와 새벽까지 남아 업체 미팅을 하고, 늦으면 종종 함께 사우나에서 자기도 했다. 아침에는 함께 골프 연습을 했고 주말에는 업무를 겸한 라운딩도 나갔다. 팀장의 능력은 뛰어났으나 예전처럼 사무실 바닥에서 함께 먹고 자던 시절을 잊었다. 반면 회사 대표는 자신과 같이 고생할 수 있는 사람을 원했다.
나만의 ‘비대칭 능력’을 키워라
1년 몇 개월이 흐른 뒤 창업 멤버 대부분이 나가고 직원들도 들락날락했지만, 후배는 살아남아 본부장이 됐다. 업무에서 경쟁하지 않았으니 사내 평판이 좋았고, 대표와 끈끈한 인간적 유대도 형성됐기 때문이다. 초기에 팀장과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이는 길을 택했다면 일찌감치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능력을 한꺼번에 통합해 성과를 창출하는 방식이다. 최근 대학생들이 이른바 ‘스펙’을 쌓기 위해 벌이는 처절한 분투를 본 사람이라면 전공과 한두 가지 자격증으로는 경쟁조차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러나 실제 업무 현장에서는 줄줄이 늘어놓은 스펙에 비해 의외로 성과가 없는 신입사원이 많다고 말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각각의 능력이 동시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필요한 것은 당연히 토익 만점 직원이 아니다. 영어로 된 기사와 논문을 분석해 해외 시장의 추세를 읽고 회사의 미래전략을 수립한 후 해외 투자자에게 직접 설명할 수 있는 직원이다. 누구나 다 갖고 있는 칸 채우기용 스펙은 중요하지 않다. 스펙을 동시통합해 기존에 회사 누구도 갖지 못한 능력을 창출해내지 않으면 좌판 위 붕어빵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이는 비대칭 능력을 키우는 일로 고스란히 연결된다. 조직에서 살아남으려면 ‘내가 아니면 안 되는’ 능력이 하나쯤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직장인들은 나만의 능력을 키우겠다고 해놓고는 대부분 영어나 프레젠테이션, 분석형 보고서 작성 같은 ‘대칭적 능력’에 노력을 쏟는다. 경쟁을 피해 앞서가겠다고 말만 했을 뿐, 실제로는 가장 경쟁이 치열한 대열을 골라 맨 뒤에 줄을 서는 격이다.
비대칭적 능력을 키운다는 건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소극적인 능력을 갖춘다는 뜻이다. 대체가 불가능한 것은 물론 또 다른 경쟁자를 불러들이지 않을 만한 영역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영어처럼 남들이 모두 중요하다고 믿는 능력을 키우는 일을 올해 목표로 삼았다면 이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순간이다. 포르투갈어, 스탠딩 유머, 회사 제품을 소개하는 인터넷 개인 블로그 운영은 어떨까. 얼핏 써먹을 일 없어 보이는 이들 재주가 단 한 번 빛을 발하는 순간, 당신의 승부는 결정된다.
주간동아